[미아 파밀리아] Say you won't let go 1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 세 사람의 이야기. 마이 베이비 Rep. 이후 시점입니다.
딱히 노선을 생각하지 않은 글입니다. 리차드, 오스카, 스티비에 대한 개인적 해석과 덧붙임이 있습니다.
이것도 시리즈를 분명 염두에 뒀었는데, 완결짓지 못했네요.
하루 온종일을 적시고도 모자란 것처럼 비가 내렸다. 덕분에 아폴로니아는 저녁 내내 한산했고, 오랜만에 세 사람은 바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오스카는 빗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비운 다음 꺼내놨던 술병을 다시 한 번씩 다 닦았고, 스티비와 리차드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품을 정리하고 수선했다.
"리차드. 아무래도 오늘 손님 오기는 글른 것 같은데?"
바람이 아폴로니아의 문을 흔들 때마다 리차드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본 오스카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술이나 좀 마시자, 오랜만에. 어제도 취할 만큼 마셔놓고 오랜만은 무슨.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흘겨보던 리차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손님 들어오면 어쩌려고?"
술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던 스티비도 리차드의 단호한 말에 다시 가만히 소품을 집어들었다. 느린 음악이 꺼질 듯 깔리고, 빗소리가 강하게 아폴로니아의 창문을 울렸다. 비 참 잘 온다. 중얼거림이 음악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눅눅한 공기는 계속해서 세 사람의 뺨을 훑었고, 결국에는 리차드마저 지금이 문을 열기에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비 그치면."
"어?"
"비 그치면 지붕 수리하자."
얼기설기 지어진 채로 몇 년을 버텼는지도 모르는 낡은 건물이다. 물이 새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특히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풀린 실밥을 잡아 뜯듯 하며 물이 새는 지붕을 노려보던 리차드는 이내 옷을 접어 정리했다. 아싸. 짧은 환호성을 지른 오스카는 얼른 술병을 꺼냈고, 스티비는 리차드를 도와 상자에 소품을 집어넣었다.
"야, 너, 정리부터 안 해?"
"알았다니까, 기다려봐. 일단 내가 이럴 줄 알고 저기 청소는 다 해놨어. 그러니까 대걸레가…."
"…내가 할게."
이것저것 들어보며 대걸레를 찾던 오스카가 멈춰섰다. 스티비는 이미 대걸레를 든 채 물로 엉망이 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나 이 상황 어디서 겪었던 것 같은데. 멍하게 서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든 오스카가 잔을 꺼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긴 바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차드가 피식 웃었다.
"왜 웃냐. 너 또 나 보고 무슨 생각 했지!"
"생각은 무슨. 나도 한 잔 달라고."
"너 한 잔만 마셔도 취하잖아. 약한 걸로 한 잔 줄게."
오스카가 시선을 눈치채고 툴툴대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리차드의 시선이 오스카의 손가락에 가 닿았다. 한때 저곳에 자리잡았던 반지. 은색의 실을 감아놓은 것 같던, 오스카한테 잘 어울리던 반지를 생각하며 리차드는 고개만 끄덕였다. 음악이 멈춘 아폴로니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게 뭐야?"
그 새 스티비는 바닥 청소를 전부 끝내고, 구석에 있던 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뭐가 있더라? 무언가 먼지 쌓인 천으로 덮여있었다. 리차드와 오스카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고, 정말로 기억에 없던 물건인 것 같아 리차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 기억났다."
오스카가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며 먼지 쌓인 천을 그대로 끌어내렸고, 옆에 있던 스티비가 졸지에 먼지를 뒤집어썼다. 콜록, 콜록. 옷에 먼지가 묻는 것보다는 열심히 닦아둔 바닥에 먼지가 떨어진 것이 더 불만이었다. 스티비는 무어라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대신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것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게 뭔데."
"피아노. 고물 피아노! 리차드, 기억나?"
"아. 그거?"
이 피아노에는 슬픈 전설이 있지……. 오스카가 운을 떼려는 기미가 보이자 리차드가 말을 끊었다. 또 저 이야기로 두 시간은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으니.
"그거야. 오스카가 어릴 때 웬 아저씨한테서 얻어온 고물 피아노. 완전 바가지 써서 사왔거든."
"이게… 피아노야?"
업라이트 피아노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생김새였다. 건반은 몇 군데가 비어있었다. 울림통은 쥐가 파먹은 부분을 가리려는 듯 나무가 덧대어져 있고, 페달은 덜렁거렸다. 그나마 건반을 하나 눌러봤을 땐 금속줄이 느슨한지 둔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났다. 버린다면 오히려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할 것 같은 퀄리티의 것이었다.
"그래. 쟤가 저런 걸 돈을 주고 사왔다니까. 피아노 치고 싶다고."
"그땐 저 정도로 엉망인 피아노일줄은 몰랐어! 알았다면 어떻게든 공짜로 받아왔을 거야. …아무튼, 꼴이 저래서 손님 앞에 내보이지도 못하고 구석에 그대로 박아놨지. 몇 번 쳐보지도 못했고. 이걸 여기 놨었구나."
"그래?"
스티비가 손으로 건반을 쓸었다. 리차드의 눈길이 따라갔다.
"스티비. 피아노 칠 줄 알아?"
스티비는 가볍게 건반을 몇 번 눌러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자 방향이었고, 아무도 그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피아노를 칠 줄 몰랐다.
"한 번도 쳐본 적 없어."
"또 피아노 하면 오스카 단테가 잘 치지."
오스카가 과장스럽게 너스레를 떨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삐걱, 피아노 의자가 비명소리를 내듯 흔들렸다. 2층에 있는 침대만큼이나 흔들리는군. 성한 곳이 없는 것들만 모인 아폴로니아 다워. 스티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스카는 처음엔 건반을 헛짚어가며 어라? 하는 소리를 흘리다가, 겨우 건반을 맞게 쳤는데 소리가 나지 않아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다시 건드렸다가, 이내 오기가 생겼는지 피아노를 몇 번 쓰다듬었다.
"야, 야.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됐거든? 내가 할 수 있는걸 보여줘야겠어. 너 은근히 나 무시하고…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은거지!"
"뭔… 그래, 맘대로 생각해라."
리차드가 슬슬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더 말을 붙여봤자 듣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 대강 고개나 끄덕이며 근처 테이블에 기대 앉았다. 오스카는 고물 피아노를 고쳐보겠다고 여전히 낑낑대고 있었고, 스티비는 관심 없는 척 술잔을 기울이다가도 시선이 계속해서 저쪽으로 돌아갔다.
"궁금해?"
다리를 꼬고 테이블에 걸터앉은 리차드가 스티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렇게 태연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술잔을 자꾸 마시려고 하거나 자꾸만 자세를 고쳐가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피아 솔져라더니, 대체 저렇게 티 나는 앨 누가 데리고 있었단 말인가. 리차드는 작게 웃었다.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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