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돌아가는 일에 대한 기록(1)

<span class="sv_member">특별출연</span>
특별출연 @t6wI9Ba3UqSaAFO
2026-03-11 15:26

22년에 쓴 글입니다. 여기 올리기 민망하여 부계정으로 올려놨었는데... 최근 또 마음이 찍혀서... 그냥 리프레시 겸 여기로 옮겨놓습니다. 22년도 캐해석입니다. 지금은 다를수도 있습니다. 제가 봤을땐 그렇게 관측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엔딩까지 구상하긴 했으나 더 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뮤지컬 스톤 더 스톤(2022) 2차 창작.

(반)코스모×(샥)사이먼 커플링 글입니다.

두 사람은 현자의 돌을 들고 소비에트로 무사 귀국했고, 코스모는 결혼을 했습니다. 불륜을 주 소재로 하고 있으니 열람에 유의해 주세요.




세묜 바실리예비치 세즈냐코프, 코스모 이바노비치 로모프, 현자의 돌 입수 후 무사 귀국.


임무 종료.


1975년 8월, 코스모 이바노비치 로모프는 부인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여름 저녁이었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고,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1년 차 신혼부부가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현관으로 돌아갔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내가 나가볼게."


율리야 안드레예브나는 당 상급학교를 졸업했고, 정치국원인 아버지와 같은 완벽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영리하고 기민한 여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무심한 얼굴로 현관에 나갔던 그의 남편이 돌아올 때에는 약간 허둥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 아래로는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당신, 무슨 일 있어?"

"아무 것도 아냐.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아. 돌려보냈어."


땀에 젖은 종이가 소리 없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안에 적힌 문장 또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지 않고도 남편의 마음이 붕 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식탁 앞에 앉아 식기를 다시 들려던 코스모가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서서 말했다.


"처리 안 하고 온 일이 생각났어. 나갔다 올게."

"언제쯤-"

"미안."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재킷만 걸친 채 급히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선 애매한 자세로, 현관문을 닫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빠르게 옮기던 걸음으로 아예 뛰기 시작했다. 손에 쥐인 종이가 힘없이 팔랑거렸다.


모자를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년은 문 앞으로 나온 사람이 코스모 이바노비치 로모프임을 확인하고 종이를 건네주었다. 종이에는 타자기로 정갈하게 쓰인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마트료나, 면회 요망. 코스모의 손이 떨렸다. 이런 짧은 문장으로 그를 온통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소비에트로 복귀하자마자 훈장 수여식에도 불참한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린 사람. 그의 행방을 알기 위해 시도한 모든 접근 방법은 허가되지 않았고 그 사람은 그렇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가라앉았다.


저녁의 적당히 식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코스모는 두 블록을 뛰어오고 나서야 너무 급하게 나온 나머지 테이블 위에 차 열쇠를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차 열쇠가 손에 쥐여 있었더라도 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밝은 저녁에 좋은 차는 눈에 너무 띄니까. 그건 그가 바라는 방식이 아닐 테니까. 코스모는 대신 두 다리로 뛰었다. 몇 년 전처럼 성급한 걸음으로, 아무런 계산도 준비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지나 코스모가 걸음을 멈춘 곳은 도시 외곽의 어느 호텔 앞이었다. 힘주어 종이를 쥐고 뛰었던 탓에 호텔 이름이 찍혀있던 곳이 땀에 젖어 번졌다. 오랜만에 꽤 되는 거리를 달려오느라 심장은 터질 것처럼 두근댔고 두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깔끔히 잘 올렸던 머리칼은 전부 흐트러져 헝클어졌고 땀이 이마를 타고 주르르 흘렀다. 목에서는 쇠 비린내가 올라왔다.


호텔 로비에는 나이가 지긋한 직원이 있었고, 코스모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으며 메모를 건넨 손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한 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는 지독하게 느렸다. 그는 초조히 버튼을 바라보다 그 시간조차 견디지 못해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6층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몰골은 누가 봐도 전력으로 뛰어온 사람이었다. 문을 두드렸을 때 아무도 없어도 실망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흐트러진 숨만 간신히 붙잡곤 607호의 문을 두드렸다. 문은 금세 열렸다. 근 2년 만에 마주한 남자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이라도 당장에 나올 줄 알았다. 그렇게 사라져서 걱정했다고, 여태 어떻게 지냈냐고. 하다못해 잘 지냈냐는 인사라도. 그러나 그 눈을 본 순간 생각했던 모든 말들은 머릿속에서 그대로 지워졌다. 새하얗게 바랜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주 입에 담았던 이름 뿐이었다.


"사이먼."


사이먼 세즈, 아니. 세묜 바실리예비치 세즈냐코프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바라본다.



로모프의 외동아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세묜이 소비에트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세묜은 거의 다 마신 술병을 들고 흔들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훈장 수여식에 불참한 후 그의 이름은 슬그머니 요원 목록에서 지워졌다. 그에게는 시 외곽의 작고 외풍이 부는 아파트 방과 훈장 하나, 다달이 나오는 약간의 연금만이 남아있었다. 지내기 나쁜 곳은 아니었다. 세묜은 살기에 더 나쁜 곳을 여럿 알았다. 여긴 날씨도 꽤 온화한 편이었고, 따뜻한 물과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 이방인에게는 마음이 조금 불편할 정도로 괜찮은 곳이었다. 가진 위상에 비해 턱없이 작은 크기의 붉고 묘한 돌을 들고 돌아가 능력과 가치를 증명한 대가였다.


나쁘지 않아.


그래서 더욱 기분이 묘한 것일지도 몰랐다. 죽지 않고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으니. 상상 속에서 그는 항상 어느 골목이나, 부두나, 건물 안이나, 앤틱샵 안에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아무도 없거나 코스모가 있었다. 아, 코스모. 그 지독하도록 신실하고 정직한 눈. 감정을 전부 비추는 맑은 눈. 귀국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따금 그의 눈치를 살피던 눈동자. 볼티모어, 앤틱샵, 홈 스위트홈, 도넛, 주크박스. 생각이 계속해서 뻗어져 나갔다.


그는 생각을 끊기 위해 병을 들어 입 안에 술을 전부 털어 넣었다. 다음 병을 찾으러 고개를 돌렸다가, 전부 비어버린 채 굴러다니는 병들만 발견하곤 몸을 일으켰다. 산책도 할 겸 술을 사 올 생각이었다. 이 근처엔 요양원이 없어서 산책 나온 노인들을 볼 일도 없는데, 세묜은 꼭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가 괜히 근처 공원을 뱅뱅 돌다 들어오곤 했다. 그래도 공원은 꽤 그럴싸했다. 숲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작나무도 심겨 있었다. 잎이 시들해 오늘내일하는 것이 꽤 오래 버티고 있었다. 자작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로 위장한 조용한 눈동자들은 무시하고 걸었다.


세묜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보드카를 집었고, 그 옆엔 신문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과 이름들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읽히는 익숙한 싸움. 아, 로모프. 시선을 돌렸다. 가게 주인은 익숙하게 담배까지 계산을 하더니 감자를 조금 구웠다며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에 구운 감자를 싸 건네주었다. 검댕과 온기가 묻은 신문에는 또 다른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막 로모바 부인이 된 여자와 가볍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부스스하게 내려가 있던 머리는 우아하게 전부 올라갔다. 남자는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은 처음 보네, 세묜은 생각했다.


세묜은 집에 돌아와 새 보드카를 땄고, 식은 감자를 입에 털어 넣었고, 피요트르에게도 감자를 권했다. 물론, 피요트르는 먹지 않았다. 맛있는데 조금 먹어보지, 할아버지. 가게 주인이 가끔 챙겨줘요. 텅 빈 집에 그의 목소리만 울렸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구려 라이터를 내려놓으면 연기가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 총알을 막아준다던 라이터는 귀국 중 잃어버렸다. 아니, 던졌던가. 던져서 바다에 영원히 가라앉게 했던가. 세묜은 담배를 피우는 내내 누군가를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혼. 코스모가 결혼이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그럴 나이였다. 오히려 이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정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로모프의 의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볼티모어에선 어딜 가든 코스모의 시선이 함께였다. 처음에는 집요히 따라붙는 시선이 감시로 느껴져 달갑지 않았지만 그 시선에는 아무런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감정. 눈이 마주친다 싶으면 먼저 피하고 마는, 그래서 세묜의 눈에는 더 곧게 보이는 일렁이는 감정들. 세묜은 곧 그 시선에 익숙해졌다. 그 안엔 더욱 뜨거운 것들이 눌러 담겨 있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책임져야 할 감정은 아니었고, 밀어내지도 않았으니 그 나름의 관용은 베푼 셈이었다. 코스모 이바노비치, 로모프. …내 아버지야.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변함이 없던 눈. 그런 눈을 가진 녀석이 결혼을.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비벼 끄던 세묜은 문득 웃음을 흘렸다. 그럼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수도원에 들어가 청빈과 정결, 순명을 서원하기라도 바랐나? 그 순수가 볼티모어를 떠나서도 계속해서 남으리라고 기대했던가? 정말 그런 걸 바랐다면 꽤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답을 찾은 천사는 하늘로 돌아갔고, 이내 세묜의 방 안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나는 것을 알면서도.


세묜은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열어놨던 창문을 닫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피요트르는 잠자리에 들었고, 그는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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