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2)

<span class="sv_member">특별출연</span>
특별출연 @t6wI9Ba3UqSaAFO
2026-03-11 15:24

뮤지컬 랭보×와일드그레이 크로스오버

1891년,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인터뷰합니다.

CP 내용은 없습니다만 논CP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글입니다. 부디 편하게 즐겨주세요.



[특집]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2)



금요일의 즐거움, 주말을 앞두고 이번 주에도 돌아온 문학기행을 기꺼이 읽기 위해 신문을 펼쳐 든 사려 깊고 상냥한 독자 여러분, 안녕하신가. 저번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시인 폴 베를렌느 씨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의 읽는 즐거움을 더욱 돋워줄 다양한 이야기들과 그의 다채로운 시적 세계에 대한 것들, 그리고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약간의 개인적인―물론 베를렌느 씨가 먼저 기꺼이 꺼내준 이야기들로, 필자는 인터뷰이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절대 캐묻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이야기를 곁들이고 있으니 부디 즐거이 읽기를 바란다.



○ 그럼 그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볼까. 삶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언급했는데?

● 그렇다. 그 기본적인 것들. 인간은 관성으로 살아가는 동물인지라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을 때엔 본인이 움직인다는 자각이 없다. —세상은 하나의 연극 무대, 모든 사람은 한낱 배우일 뿐. 제각기 무대에 등장하고 퇴장하지요—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 에서 말했듯 우리는 배우로 세상에 와 자연스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배우가, 무대 중간에 자신이 맡은 배역을 수행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 선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자의로 멈추었든, 타의로 세워진 것이든 말이다.


○ 오, 극작가로서 그건 정말이지 배우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깐의 멈칫거림에 이어지는 관객들의 야유, 동료들의 당황!

● 대부분은 그 멈추어 서는 일에서 금방 회복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지만, 때때로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 ‘잠깐의 멈칫거림’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음 장면으로 나아갈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 대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전반적인 인생에 대한 감각까지도?

● 맞다. 살아가는 것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일들을 해내는 것이 버겁게 된다.


○ 이제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열기 앞에서 그걸 되찾는 경험을 했다고.

● 부끄럽게도 한동안은 나 역시 그랬다. 길을 잃은 채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낭비했다. 멈추어 섰던 시간이 길었고, 비관에 빠져 있기도 했다. 작품 활동 역시 한동안 끊겨 있었고.


○ 슬럼프였나.

● 삶에 대한 슬럼프였다. 일상이 지옥이 될 때. 그럴 때 전부 내려놓고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굉장히 의외의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 의외의 사실이라면?

● 결국 세상은 어딜 가든 지옥이라는 것.



“지옥이라. 너무 추상적인데요? 비관적이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네, 베를렌느 씨의 작품을 아는 독자들이라면 놀랄 것 같군요. ‘그렇게 다정하고 달콤한 시를 써내는 시인이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하고요.”


상대는 남자의 너스레에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넘기고 답했다.


“정말로 제 작품을 읽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내가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도 시인 폴 베를렌느의 성실한 독자이자 팬이랍니다. 그 시인의 시집 초판본을 어렵게 구해 사인까지 받았을 때는 기뻐하며 주변인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하는 탓에, 결국엔 한 소릴 들은 적도 있었죠.”


남자가 팔짱을 끼더니 입술을 살짝 삐쭉거렸다.


“왜요, 못 믿으시겠습니까? 고작 비관이라는 단어를 꺼냈다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상대가 얼굴에 옅게 미소를 띄었다. 남자가 으흠? 하더니 이내 팔짱을 풀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시 향수가 어렸던 듯한 상대의 표정은 이내 내면의 슬픔을 제 것으로 체화한 이들이 가진 특유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상당히—물론 남자도 이제 젊은 나이는 아니기야 하지만—늙다리 같은 태도로군. 젊은 세대에 맞춰주는 것이 익숙한 듯하잖아. 자식 세대를 대하는 것이 익숙할 나이기야 한데, 상대에게는 제대로 육아를 할 시간이 없었을 테고. 남자의 머리에서 몇 가지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흩어버렸다. 상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남자는 잠자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옥에서 헤매는 모든 걸음까지가 제가 걷는 길이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 지옥이라니! 신실한 독자들이라면 이 인터뷰를 읽다가 펄쩍 놀라 자빠지겠는걸.

● 그런가? 그렇다면 고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 역시 독실한 신자이고, 성경에서 묘사하는 지옥에 떨어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시인의 상상력과 과장을 더해 표현했다고 봐주면 고맙겠다.


○ 동행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그 동행자 또한 예술가인가?

● 개인적으로는 예술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업 예술가는 아니다. 길을 가다가 한 번쯤 마주쳤을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하고 다정한 이웃 같은 사람이다.


○ 이웃이 아니라, 이웃 같은 사람이라는 말에 더욱 궁금증이 생긴다.

● 사실상 이웃은 아니니까. (웃음) 실은 꽤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다. 아프리카에 간 것도 우발적이었고. 함께 계획 없는 여행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 맞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고작 몇 시간 전이었지! 그래서 필자가 베를렌느 씨를 놓쳤고. 그렇다면 베를렌느 씨와 함께 돌아온 그 동행자는 어떻게 되었나? ‘잠깐의 멈칫거림’에서 벗어났나?

● 그 사람 역시 그의 길을 찾았다.


○ 그의 길?

● 그가 걷고 있었던, 형편없이 헤매고만 있다고 착각했던 길. 결코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베를렌느 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치고 한동안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고풍스럽고 세월의 향취가 묻어나는 창틀에 하얗게 서리가 끼어 있었다. 그 옅은 눈꽃 같은 풍경 너머로 조금씩 어두워지는 파리의 풍경이 보였다. 희뿌연 안개가 끼어있는 것도 같은 풍경 속 사람들이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결코 돌아갈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애틋한 길이라, 독자 여러분께선 상상해본 적 있는가? 


필자는 베를렌느 씨의 시선을 따라가다, 문득 이 시인의 시선이 향했을 아프리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날카로운 태양. 앞서가는 이의 모습이 일렁이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아스라이 보이는……” 베를렌느 씨는 이렇게 묘사하였지만, 실은 아프리카의 모든 곳이 신비로운 모래바람으로 뒤덮인 것은 아니라며 추가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모습이 마치 코와 입을 단단히 가리고 동행자와 함께 끔찍한 항해를 이어 나가는 자, 에이헤브를 지켜보는 서술자 이스마엘과 같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묘사일까—상대는 흉악한 뱃사람이 아닌, 멀쑥한 프랑스 신사기는 하지만 말이다. 필자의 이 즐거운 상상은, 베를렌느 씨의 시선이 다시 내부로 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몇 년 전 동료 시인들로부터 ‘시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 사실 그런 칭호를 받을 만한 훌륭한 동료 시인들이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과분한 칭호라고 생각한다.


○ 과분한 칭호라니, 시인 베를렌느 씨를 사랑하고 또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소 실망하겠는걸.

● 예술이라는 것은 훈장을 받거나 명예 작위를 받는 것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닌, 끝이 없는 작업이니까. 나 자신을 뛰어넘을 예술가들은 항상 존재하고.


○ 그 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래도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 가끔 생각했던 건데, 예술가로 죽어 그 순간에 남으면 어떨까 싶었다. 예술가로서의 끝이 정해져 있다면, 죽어서 완성되는 불멸의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방금 말한 건 없던 일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확실히 대중들에게 툭 던지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이었죠? 죽어 그 순간에 박제된다니. 하지만 다들 좋아할 것 같기도 합니다. 불멸의 천재가 죽음으로 남긴 작품,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다들 무척이나 즐거워 하겠죠."


상대가 잔을 내려놓곤 마른세수를 했다. 손길이 닿는 대로 푸석한 피부가 당겨졌다 밀려지기를 반복했다. 지친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이만 쉬고 싶군요."

"좋습니다. 인터뷰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시점이니까. 없었던 일로 한 마지막 답변 하나만 생각해보고 잠깐 휴식하는 건 어떨까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와일드 씨. 제 말이 실례가 될 것을 압니다만, 인터뷰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입니다."

"이런. 지금 와서요?"


제 턱을 문지르던 남자가 이유를 묻듯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멀쩡했으면서. 단순한 컨디션 저하라기에는 태도 자체가 상당히 방어적으로 바뀌어,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을 성싶었다. 죽음, 천재 예술가, 마지막. 몇 가지 키워드가 문장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도출하게 되었다— 제 눈앞 상대의, 십수 년 전 꽤 시끌벅적했던 스캔들이라던가. 하지만 아직도?


"인터뷰를 허락한 게 실수였어요. 저는, 그냥……."

"인터뷰를—여러 차례 고사하고, 편지를 보내고, 당일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주 후 다시 나타나 —허락한 게요? 실수 치곤 꽤 길고 지난하네요."

"모든 일들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대체 어디부터 죄송할 셈이죠? 제 친구가 어느 날 그런 말을 하더군요.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보다 존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유용하다” 고. 베를렌느 씨,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판단이나 불가피한 결정, 당신 말대로 '실수'를 하곤 합니다. 중요한 건 그 이후죠."

"……."


상대가 한참이나 침묵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입을 꾸욱 닫아버리고, 말을 고르는 듯, 쏟아지는 상념을 막으려는 듯 한참이나 눈가가 움찔거렸다. 남자가 눈썹을 들썩였다. 참 까다로운 인터뷰이야. 그는 물론 심리 상담사는 아니었으나, 취재가 쉽지 않은 인터뷰이를 잘 구슬려 지면에 실어내는 것을 몇 번이고 해보았던 경험으로, 참을성 있게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도 같으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날카롭던 직전의 태도보다는 누그러진 투로, 상대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꼭 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할까요?"

"다른 주제로 넘어가길 원하십니까? 그럼 내 실수 이야기 하날 꺼내 볼까요. <켄터빌의 유령> 이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연재하면서 범했던 실수 이야기인데요. 원하던 결말을 내지 못했거든요."

"……도리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 결말 말입니까?"

"소설에선 그렇게 끝나죠."

"그게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예술이 삶을 따라갈 이유는 없으니까. 삶에서의 ‘미덕’이라고 칭하는 것들과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은 전혀 다르니까요."

"상당히—"

"압니다. 유미적이죠."

"상당히 과감하네요. 문단이며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다 식어버린 찻잔을 밀어놓고, 남자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수많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을 법한 말을 과감하다는 단어로 발칙한 일탈처럼 포장해버린 상대의 연륜이 새삼스러워서.


"도덕적인 것은 반듯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겠죠. 그러나 반듯한 길이 항상 아름답지는 않아요. 내가 원한 건 그런, 권선징악적이고 모범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거든요. 내 다음 작품은 다를 겁니다. 재미 없지 않나요, 타의 모범이 되는 올바른 예술가라는 건."

"……다음 작품이요."

"새로운 희곡을 쓰고 있어요. 헤롯 왕의 의붓딸, 살로메 3세에 관한 이야기죠. 사실 이미 프랑스어로 초안은 나왔답니다. 허락되지 않은 기쁨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당신의 그 소설보다 더한 것을 출간한다면 괴상Queer하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영국에서는 더더욱."

"하하하, 괴상한 게 뭐 그리 나쁜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욕할 거예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쁜 말을 쑥덕거리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게 뭔지 아십니까? 내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 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럴 바엔 좀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편이 낫죠."

그의 말에서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돋보였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난 상대가 한참 대답이 없다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당신은 정말이지… '그 사람' 을 닮았네요."

"‘그 사람’ 을 닮았다?"



○ 몇 년 전 동료 시인들로부터 ‘시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 사실 그런 칭호를 받을 만한 훌륭한 동료 시인들이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과분한 칭호라고 생각한다.


○ 과분한 칭호라니, 시인 베를렌느 씨를 사랑하고 또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소 실망하겠는걸.

● 예술이라는 것은 훈장을 받거나 명예 작위를 받는 것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닌, 끝이 없는 작업이니까. 시대가 바뀌면, 또 다른 예술이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게 될 것이니 당연한 말이다.


○ 그 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래도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 어쩌면 죽어서도 죽지 않는, 영원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에게 부여된 사명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 또한 그런 의미로 알고 더욱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



―베를렌느 씨가 기꺼이 꺼내 준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3)에서 계속.





3편에서 끝이 날 예정입니다. 다음 편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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