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1)
뮤지컬 랭보×와일드그레이 크로스오버
1891년,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인터뷰합니다.
CP 내용은 없습니다만 논CP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글입니다. 부디 편하게 즐겨주세요.
[특집]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1)
마침내 독자 여러분이 기다리고 또 고대하던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시리즈를 즐겨 왔던 성실하고 다정한 독자라면 알 수 있겠지만, 주간 연재를 하는 글쟁이라는 것이 여간 바쁜 것이 아니나, 필자는 주간 연재를 지속하며 이전에도 필자의 지인―이를테면 지난번 G. 버나드 쇼 씨와 함께했던 특집 기사라던가―들을 소소하게 인터뷰해 온 전적이 있다.
그리고 가끔 출판사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을 보자면, 꽤 많은 독자들이 원하고 있으나 여태껏 단 한 번도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 수줍은 시인이 있었으니,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그 시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오늘 특집 인터뷰는 필자가 시인 폴 M. 베를렌느 씨를 만나 함께 한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겨 놓았다.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시인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으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반드시 끝까지 함께해주시길!
필자가 처음 독자들의 요청을 받아 베를렌느 씨의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했을 때는 편지를 수차례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모름지기 영국의 신사라면, 상대의 답이 올 때까지 품위 있게 앉아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맞겠으나―독자 여러분은 짐작하겠지만―필자는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되어 파리의 베를렌느 씨 자택으로 직접 방문하였다.
안타깝게도 자택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서 두어 시간을 서성이다 친절한 이웃의 도움으로 베를렌느 씨가 늘 술을 마신다던 술집에 방문했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께 퀴즈, 과연 베를렌느 씨는 필자와의 첫 만남에서 인터뷰 제안을 수락했을까?
어떻게 상상하였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베를렌느 씨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며 필자를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파리의 예술가라면 응당 그렇지만, 그에게선 압생트의 향쑥 냄새가 짙게 풍겼고 눈빛에는 깊이가 있었다. 술독에 빠진 조금 음울한 감성의 시인― 그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깊게 상처 입은 야수라는 표현을 말쑥한 신사에게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베를렌느 씨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첫 번째 거절 이후 설득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언제든 그에게 다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아니겠는가. 몇 번의 시도 끝에 베를렌느 씨에게서 드디어 답신을 받은 것이 두 달 전의 일이다. 필자의 간곡하고도 감동적인 호소 끝에 베를렌느 씨가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이다. 필자는 기쁜 마음으로, 베를렌느 씨의 자택에 두 번째로 방문하였으나 여기서 큰 좌절을 맞게 된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시인과 소설가를 비롯한 우리 예술가들은 어디로 언제 훌쩍 떠나 버릴지 모른다. 성실히 작품을 써내는 우리 출판사의 저자분들도 있겠지만, 예술가의 유전자에는 본디 방랑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베를렌느 씨 또한, 친절한 이웃의 말에 따르면― 인터뷰 당일 아침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에 필자는 불행히도, 두 달 전에 다시 빈손으로 영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수 주 전 베를렌느 씨에게 한 통의 편지를 다시 받기 전까지 필자는 무척이나 바쁜 생활을 보냈다. 새로운 작품을 써내면서 극장에 새로 오른 희곡을 관람하고―어떤 작품인지 굳이 집어 말하지는 않겠으나 필자의 눈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예술적이지 못한 졸작이었다― 문학기행을 연재하며 다른 예술가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 나갔으니 말이다. 베를렌느 씨에게 다시 편지를 받은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며, 그리하여 문학기행 연재를 한 주차 빼먹은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필자는 편지를 받자마자 모든 일을 뒤로 하고 다시 파리로 달려갔다!
다시 만난 베를렌느 씨에게선 여전히 음울한 인상이 감돌았으나, 쉬는 동안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는 그의 눈에는 이채가 돌았다. 필자가 베를렌느 씨를 만난 것이 이번이 두 번째이니 실은 이것이 그의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품위 있는 손짓과 고상한 프랑스 말씨― 그에 대한 묘사를 전부 싣고 싶지만, 지면의 한계로 생략하는 것을 독자 여러분의 넓은 마음씨로 양해해 주시길.
○ 안녕하신가,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독자 여러분을 위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 시인 폴 마리 베를렌느라고 한다.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
○ 매우 영광이라니! 국왕이라도 만나 뵙는 줄 알겠다. 우리 독자 여러분은 멀끔하고 품위 있는 신사지만 편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기도 하니 편히 말해라.
● 그런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라 미욱할 수도 있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부디 양해 바란다.
○ 지금도 이렇게 말을 잘 하고 있지 않나. 그건 그렇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거절했으나 끝내 마음을 돌렸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이렇다. 최근에 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서.
○ 그 허약한 몸을 이끌고 아프리카에 다녀왔다던데. (웃음)
● (웃음) 맞다. 마르세유에 가서 아프리카행 배를 타고도 한참이었다.
○ 꽤 먼 길을 다녀왔다. 굳이 아프리카에 간 이유가 있었나.
● 동반한 지인이 있었다. 마음 정리를 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너무 덥더라. (웃음)
○ 아프리카의 더위는 익히 전해 들은 바 있다. 시인의 감수성을 담아, 독자 여러분께 그 풍경을 묘사해 본다면.
● 날카로운 태양. 앞서가는 이의 모습이 일렁이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다. 낯선 방문자를 환영하지 않는 바람과 금빛 모래가 입안의 수분을 모조리 빼앗아 가는 곳. 제아무리 품위 넘치는 신사라도, 그곳에 가게 된다면 코트와 모자를 벗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갗을 녹일 것 같은 더위가 그것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좋아요, 이 정도면 됐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죠.”
남자가 펜을 떼고 수첩을 넘겼다. 종이가 넘어가는 새로 질문들의 개수를 세어본 상대방이 옅게 미소 지었다.
“저에 대해 참 많은 것을 궁금해하시는군요.”
“이런, 이미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두 번이나 바람을 맞았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상대가 머쓱하게 답했다.
“일부러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예술가들의 방랑벽이란! 나도 글이 너무 써지지 않을 때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기도 하지요. 실제로 그 행위가 영감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글을 쓰려고 간 건 아닙니다.”
“마음 정리라고 말씀하셨었죠.”
남자가 펜 끝으로 이미 적어놓은 글자들을 툭툭 쳤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차를 마실 동안 남자가 수첩을 내려놓았다. 찻잔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올랐다. 집에 있는 유일한 홍차라며, 상대가 차를 내오는 동안 머쓱하게 덧붙였던 말이 떠올랐다.
“무엇에 대한 정리인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죠?”
“캐물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가십지가 아니니까요.”
“좋네요.”
남자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의 음울한 인상이 한결 정리되었으나 여전히 눈 밑에는 불면의 흔적이 남았고, 눈을 덮을 길이로 자라난 푸석푸석한 머리칼은 햇볕에 바랜 것처럼 끝자락이 거칠었다. 손톱 밑은 전부 까졌고, 손은 이따금 바르르 떨렸으며, 말끝마다 잔기침을 뱉어냈다. 그래도,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못 얻어먹은 것 같던 꼴보다야 나아졌군!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는 인지하고 있으니―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래서, 그곳에서 영감은 얻어 왔나?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은 베를렌느 씨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 아쉽게도 영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만한 것을 찾지는 못했다. 대신 다른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상기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 시인에게 영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 전반적인 인생에 대한 감각들.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것. 살아가는 것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일들.
○ 농담이겠지! 그건 어린아이가 배워야 할 감각이지 ‘시인의 왕’이 깨달아야 할 일은 아닌데.
● 누구에게나 당연히 해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나로서는 그런 경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아프리카의 열기 앞에서라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길 위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베를렌느 씨와의 즐거운 시간은 도시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와 함께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한 내용들은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기행: 마침내 시인의 왕 폴 베를렌느를 만나다(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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