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쓸모 없는 주정뱅이들
뮤지컬 스톤 더 스톤 2차 창작
반스모, 주누먼 노선을 생각하고 쓴 글입니다.
CP내용은 아닙니다만 논CP라 하기도 애매해서...
탁. 먼지가 쌓인 채 깜빡이던 앤틱샵 1층 바깥의 전구가 꺼졌다. 문에 걸린 오픈 표지판을 뒤집어 걸어놓고 코스모는 곧바로 문을 잠갔다. 굳이 잠그지 않아도 새벽 내내 맨정신으로 이 작은 골목길에 드나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그렇게 했고, 사이먼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창 가장자리에 묶여 있던 커튼까지 꼼꼼히 치면 창 너머로 넘어오던 싸구려 네온사인 불빛이 가려졌다. 술 취한 사람들의 주정과 웃음소리 또한.
볼티모어와의 완전한 단절로 이 작은 앤틱샵 안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들의 아지트가 된다. 가스등을 책상 위에 소리나게 올려두고 사이먼이 코스모를 부른다.
”코스모. 그냥 들어가지 말고 한 잔 어때.”
”어젯밤, 정보를 입수했다고 나가 놓고 이미 마신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그건 어제잖아. 지금은 오늘이고. 12시를 넘겼으니 이틀이나 지났네.”
“안 돼, 내일 일찍 나가봐야 하잖아.”
아쉬운 듯 사이먼이 눈썹을 으쓱였으나, 그를 보는 코스모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몇 초간 눈이 더 마주친다. 코스모의 표정이 아주 조금 누그러진다.
“그래도 안 돼.”
잠깐의 정적 후, 코스모는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대신, 조금만. 조건을 붙여보지만 두 사람 다 그게 정말 지켜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바뀔세라 사이먼이 술병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코스모는 선반에서 양철 컵 두 개를 꺼내 그 앞에 내려놓는다. 잔을 채우고 건배라도 하려는 듯 사이먼이 잔을 들어올린다.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 빠르게 절반을 비우면, 술의 양이 얼마나 줄었는지 가늠하는 코스모의 얼굴이 보인다. 입꼬리를 올리며 잔을 내려놓은 사이먼이 말한다.
“아침부터 앤틱샵에 물건 들여놓느라 수고 많았어. 일 년에 한두 번은 오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참.”
“처음 왔을때도 꽤 본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물건을 받기도 하는 줄은 몰랐어.”
“물론, 내가 도착했을 땐 그냥 낡은 창고였지. 거의 폐허였다고. 옛날엔 술집으로 쓰였다고 들었어.”
코스모는 잠자코 예전의 모습을 그려본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던 흔적이 남겨진 벽을 상상하고, 먼지쌓인 채 쓸쓸히 폐허가 된 자리를 지키는 대들보를 생각한다. 지금은 괴상한 센스의 그림이 걸려 있는 대들보는 예전의 모습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그 눈길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이먼은 또 병을 기울인다. 속도가 너무 빠른데. 코스모가 만류한다. 잔을 뺏으려는 듯 손을 뻗지만, 사이먼이 더 빠르게 잔을 가로챈다. 불만스러운 듯 노려보는 얼굴에는 그저 미소를 지어준다. 이윽고 잠시간의 정적이 찾아온다. 싱거운 볼티모어 위스키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고요함이다. 턱을 괴고 좁은 앤틱샵 안쪽을 둘러보던 코스모가 문득 묻는다.
"여기 있는 물건들, 팔리긴 해?"
"안 팔리지. 제대로 쓸 수가 없는 것들이니까."
"그럼 왜 받은 거야? 거절해도 되잖아."
"여기가 이 물건들의 자린 것 같아서. "
구형 라디오, 거울, 초상화… 작게 중얼거리던 사이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피아노 앞에 가 앉는다. 먼지가 가득 쌓이고 색이 바랜, 파란 피아노다. 여기 있은 지 한 세기는 지난 것 같은 외관과는 다르게 건반을 조심스레 눌러보면 맑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피아노는 페달이 망가졌어. 그렇지만 음들은 여전히 잘 나오지. 저건 철 지난 패션 잡지, 파리에서 유명한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실려 있대. 저기 놓인 건 진짜 루비가 박힌 단검. 근데 녹슬고 이가 나가서 못 써. 물건들의 사연을 설명하는 사이먼을 따라 피아노 의자에 앉은 코스모가 손끝으로 건반을 눌러본다. 자연스럽게 다른 손가락들이 자리를 잡으면 익숙한 선율이 들려온다.
"차이코프스키?"
"센티멘탈 왈츠."
"코스모, 피아노도 칠 줄 알았어?"
어릴 때 조금. 왼손이 반주로 끼어들고, 코스모는 악보 없이도 손에 익은 듯 그럴듯하게 연주한다. 조금 배운 솜씨는 아닌데, 그리 생각하며 사이먼은 또다시 잔을 비운다. 손끝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음악은 알콜 향이 스며든 앤틱샵의 공기를 금세 녹인다. 사이먼이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어깨에 슬쩍 기대면 코스모의 손이 멈춘다. 왜 멈춰. 눈을 뜨고 미소짓는 사이먼을 내려다보던 코스모는 이내 말 없이 술잔을 뺏어든다. 남은 술을 벌컥 마셔버리곤 잔을 건네주는 눈빛이 살짝 떨리는 것도 같다. 제게 다시 돌려주는 것임을 알면서도 사이먼은 모르는 척 다시 양철컵에 위스키를 붓는다. 마셔, 코스모. 그는 눈썹을 으쓱이곤, 순순히 잔을 받아든다.
순식간에 병의 바닥이 보여 사이먼이 새 보드카 병을 꺼내는데도 코스모는 말리지 않는다.
공기는 알콜 향으로 가득 찼다. 잔을 연거푸 받아드는 코스모의 손 끝이 빨갛게 달았다.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라 병정 인형의 붉은 천 같다. 조금 골려주려고 했을 뿐인데 끝까지 받아마시고. 이래서야 바깥의 주정뱅이들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일 것이라고, 사이먼은 웃음이 나오는 새로 생각한다. 코스모는 꽤 취한 듯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세탁기 사용 설명서를 쥐고 작은 글씨를 읽으려 인상을 한껏 구기고 있다.
"안 보여."
"뭐가?"
"이거. 글씨가 작아…"
코스모. 사이먼이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자 코스모는 고개를 들어 응시한다. 조용히 상대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눈이 가스등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무슨 말을 하든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실한 그 눈. 너 취한 것 같은데. 실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는 너도, 얼굴이 새빨개. 몸은 왜 흔드는 거야… 자신의 고개가 꾸벅꾸벅 떨어진다는 것도 모른 채 코스모가 대꾸한다.
"글쎄, 춤이라도 추고 싶나봐."
틈만 나면 춤을 추던 누군가처럼. 알콜이 감도는 공기가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기억은 괴롭지가 않고 오히려 기껍다.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뜨거워진 뺨을 철제 기둥에 기댄 채 푸욱 숨을 내쉬는 코스모의 입가에도 어느덧 웃음이 걸린다. 평소에는 긴장으로 딱딱하게 다물린 입술이 흐물거리며 풀어져 꽤 유순해 보인다.
“웃으니까 보기 좋은데.”
잔에다가 쇠막대를 두드리던 코스모가 방금 무슨 말을 했냐는 듯 고개를 들어올린다. 아무 것도 아냐, 사이먼은 미소짓는다. 다시 고개를 숙인 그의 옷깃 사이로 얇은 금속판이 반짝이며 줄에 걸린 채 흔들린다. 촌스러울 정도로 색깔들이 들어찬 앤틱샵에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은색. 손을 뻗어 금속판을 붙잡으면 그의 몸이 순순히 앞으로 끌려온다.
손에 잡히는 것은 체온으로 미지근해진 인식표다. 한 쪽엔 구멍이 뚫려 군번줄에 꿰여 있고, 음각으로 긴 번호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손으로 매만지는 얇디 얇은 판에는 그 이상의 정보가 없다. 이름도, 소속도, 혈액형도. KGB 소속 특수요원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적대국에 알리려는 것도 아니고, 요원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못내 서글픈 것도 어쩔 수 없다.
조용히 인식표를 만지작거리다 손에서 놓아주면 코스모는 왜 그러냐 묻는 일도 없이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아니, 그런 걸 물을 정신도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 옷을 정리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이먼."
"응, 코스모."
"사이먼 세즈…."
왜 그렇게 불러. 사이먼은 눈에 감돌았던 표정을 지우고, 웃음을 띤 채 코스모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소리내어 웃는다. 테이블에 얼굴을 기댄 채,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눈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럴 때엔 더욱 솔직해진다. 사이먼이 어디로 움직이든 완전히 감기기 전까지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오는 열렬한 눈동자. 다른 눈동자들처럼 꺼림칙하다거나 싫지는 않다. 사이먼은 코스모의 어깨를 부드럽게 손으로 쥔다. 코스모. …응.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응. 이내 코스모의 눈이 감긴다. 대답하는 소리는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여긴 고장나거나 망가진 것들만 있잖아. 자본주의에서 환영하지 않는 것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연만 잔뜩 붙은."
더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옆에는 빈 병이 서너 개 굴러다니고, 바깥은 늦은 밤 치고도 고요하다. 사이먼이 코스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어쩌면 여기가 내 자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코스모는 작은 숨소리만을 내뱉는다. 사이먼은 그 앞에 앉아 힙플라스크에 담긴 보드카를 홀짝인다. 충분히 취하거나 충분히 솔직하기엔 밤이 너무 깊었다.
"그냥 해본 말이야."
아무도 듣지 않지만 꼭 해야 했던 말을 입 밖으로 흘리고, 그는 마찬가지로 코스모의 앞에 엎드린다. 영락없이 두 주정뱅이가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다 못해 쓰러진 모양새가 되어 그는 눈을 감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표정이려나. 나보다는 코스모가 더 빨리 일어날 텐데. 날 깨울 거고, 숙취가 있는 척을 해야 하나… 따위의 고민을 하다 그는 다정한 이름을 작게 중얼인다.
잘 자, 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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